금주의 <금강신문>에 기고한 졸고를, 여기에서도 전재합니다. 덧붙여서 말씀드리자면, 저는 체험으로서의 혁명의 어떤 실존적 차원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대개 혁명가들을 "폭력가"라고 몰아세우지만, 사실 황제/총리대신 암살 기도와 같은 밑으로부터의 전복적 폭력을 행한다는 것은, 동시에 "사회로부터의 자발적 퇴출"을 의미합니다. 사형이나 종신형을 운좋게 면해도, 한 번 "지존지엄"에 대한 실질적 부정, 즉 국가 우두머리라는 버스의 죽임을 계획한 사람이면, 이 사회에서도 그 어떤 계급사회에서도 더이상 체제에 편입하여 "편안하게" 살 수 없단 말입니다. 소위 이야기하는 "출세" 따위는 물론, 일상의 안락도 보통 없습니다. 전향하지 않는 이상...운이 좋아봐야 평생은 박해 받는 극빈분자입니다. 재미있게도, 보통은 정권이 180도로 바뀌어도 똑같습니다. 아나키스트 혁명가로 그 혁명 일생을 시작한 김학철 선생을 보시죠. 중화인민공화국의 "인민 정권"하에서도 결국 팽덕회 선생의 올바른 로선을 지지하시고 모택동의 대약진이라는 오류를 비판한 "죄"로 엄청나게 고생하시고 장기 옥고 치르시고 "내부적 타자"로 사셔야 했습니다. "혁명정권"은 수립돼도 혁명가는 끝내 편안하지 못하고, 편안해지면 벌써 혁명가는 아니죠.
그렇다면...이런 고통의 길을 스스로 택하시는 분은 과연 그 마음의 저변에 인간과 생명에 어느 정도 큰 사랑을 하셔야 가능할까요? 어떻게 보면 혁명가들은 현대의 성인군자들입니다. 그리고 굳이 불교적 언어로 표현하지 않아도, 그들에게 그들의 자아를 타물과 직결시키는 일종의 不二 사상이 무의식적으로나마 없다면 자진해서 신에게 세속적으로 행복했을 수도 잇었던 평생을 반납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정말 여간 강한 "깨달음", 즉 모든 생명들의 상호관련성에 대한 이해, 같은 게 없다면 매우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저는 부끄럽게도 폭탄을 만들 줄도 모르고 던질 만한 용기도 없습니다. 그러나 權鬼를 상대로 폭탄을 던지는 순간 자기 자신의 세속적인 모든 것을 부정하신 분들을 대단히 존경합니다. 부처나 예수만큼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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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공부는 가끔가다가 참 한심하게 느껴진다. 인간들이 아무리 서로 연대하여 자유나 평등, 민주를 향해서 돌진해도, 이런 시도들이 결국 완승을 거두지 못하고 중간에서 부분적으로나마 패배하는 것은 역사다. 레닌 시절에 만국 피억압자들의 연대투쟁을 외쳤다가 스탈린시절에 접어들어 ‘일국 사회주의’로 대폭 축소된 러시아 혁명의 굴절만 봐도 이길 수 없는 슬픔이 스며든다. 사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도 미완의 혁명이긴 하지만, 1987년6월투쟁의 결과들이 치명적으로 훼손돼 표현·정치활동의 자유가 대폭 제한되는 것이 아닌가? 역사는 진보·퇴보의 끝없는 반복이란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런데도 역사하는 보람 하나 있다. 이 모든 굴절, 왜곡, 퇴보 속에서도 자유와 깨달음을 향하는 인간의 본능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 이 보람이 어떤 것인지 설명해보겠다. 약 26년 전, 소련에서의 대입의 하나인 국사 (소련사) 시험을 준비했을 때에, 나를 너무나 감동시킨 문서를 읽은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 그 당시에 흔히 “허무당”이라고 불러지곤 했던 인민주의적 테러리스트인 나탈리야 클리모파 (1885-1918)라는 여성이, 1906년에 사형을 앞두고 사형수 감방에서 쓴 고백의 편지이었다. 결국 그녀에게 사형이 감옥형으로 감형돼 형장에서의 죽음을 면하게 됐지만, 그녀는 그것을 모르면서 장문의 편지를 썼다. 그 편지의 내용을, 나는 26년만에도 한줄도 잊을 수 없다. 자유를 위해서 적도 자신도 희생시킬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묘령의 여성은, 죽음을 기다리면서 하등의 공포없이 순간순간을 즐겼다고 썼기 때문이다.
그녀가 즐거워했던 이유는? 사생의 경계선에 서서, 그녀는 개아 (個我)의 삶도 죽음도 결국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둘러본 모든 생물, 모든 타자들의 신체 세포 하나하나가, 결국 그녀와 에너지 흐름의 하나로 순간적으로 파악됐다. 그리고 그 흐름의 아주 깊은 근원 속에는, 그녀는 무한한 희열의 원천을 발견했다. 그것을 실감한 이상, 더 이상 두려워할 일도 없었다. 공포의 뿌리는 개아의 상(像)에 집착하는 데에 있다. 개아의 환상이 씻겨지고, 사사무애 (事事無礙)의 진실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 공포는 사라진다. 원융의 세계, 모든 생명에 대한 외경의 기쁨만 남는 것이다.
클리모파는 불경을 읽은 적은 없었을 것이다. 한데 굳이 불교가 뭔지 몰라도, 그녀가 편지에서 묘사한 깨달음은 그 본질에 있어서는 불교에서 말하는 깨침과 일맥상통할 것이다. 이와 같은 일치는 우연일까? 테러리즘이라는 방법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도 있겠지만, 결국 타자들의 해방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는 혁명활동은 넓은 의미의 자비의 실천이다. 그런 실천을 하면서 실존적 고민을 계속하게 될 경우 삼라만상, 일체중생 중에서 나에게 타자가 없다는,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진리를 과연 직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결국 바른 실천 (正業)하는 사람은 바른 세계관 (正見)을 갖게 된다는 이야기다. 역사에서 자유를 향한 몸부림 속에서 이렇게 깨달음을 얻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게 되면, 절로 환경이 강요하는, 체제의 틀에 박힌 삶과 다른 삶을 한 순간이라도 살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그런 충동들을 느끼게끔 하는 것이야말로 역사의 효용이 아닌가, 싶다. 물론 나를 포함하여 우리 선남선녀들은 다 클리모파와 같은 혁명가야 될 수 없다. 한데 타자를 위해 자신을 혁명의 화염 속으로 던진 사람의 입장에서 나의 삶을 한 번이라도 돌아보고, 나도 과연 자타불이 (自他不二)의 진리를 어디까지 실천하는가를 스스로 점검해보는 것도 귀중한 일일 것이다.
자신과 타인을 둘로 나누지 아니하다...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죠..근데..그걸 뛰어넘는..다는건.....인간만이 간직한 숭고함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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